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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 경향잡지

      
    광주로 향하다
      
    어느 봄날, 나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16년 만에 광주로 향하고 있었다. 봄날의 아름다운 정취는 간 곳 없고 온갖 상념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16년 전 군종신부 훈련을 받으러 당당한 모습으로 달려가던 그 호남선 열차를 타고, 지금은 술의 패배자로서 폐인이 다 되어 병든 몸을 치료받고자 병원으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이 처참하리만큼 초라해 보였다.

    사제로서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고, 나를 그처럼 아껴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신자들이나 가족들에게 술로 인해 끼쳐드린 피해를 생각하니 심한 죄책감으로 주변의 시선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광주의 알코올 중독 병원에 도착, 입원 수속을 마치기가 무섭게 바로 폐쇄병동으로 안내되었다. 검사 결과 ‘중대한 위기의 알코올 중독자’란 무서운 판정을 받았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부인하여 왔던가?

    이제 더 이상의 부정이나 변명은 자신을 속이는 것임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무익하다고 여겨져, 겸허하게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에게는 오직 병원치료에 전념하여 거듭거듭 다시 태어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굳게굳게 다짐하였다.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
      
    입원한 날 오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가 바로 시작되었다. 「회복에 이르는 길」이란 책을 읽는 동안 알코올 중독이 얼마나 무섭고 끈질긴 병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알코올 중독이 몸과 마음, 영혼에 주는 피해까지도 알게 되었다. 폐쇄병동의 입원을 마치고 개방병동으로 옮겨와 본격적인 치료가 진행되었다.
      
    4단계의 치료와 교육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16년 전 그처럼 고된 군사 훈련도 잘 마쳤는데, 이 정도의 치료가 나를 왜 그토록 힘들게 하였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픔이었다. 그 동안 내 삶이 남과 외부를 보는 데는 익숙했지만 나의 내면을 성찰하는 데는 미숙했다. 어쩌면 추하고 위선적인 나를 보는 것이 더욱 두렵고 괴로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단계 치료를 받으며 그 동안 내 자신이 술에 대해서 완전히 무력하여 전혀 통제할 수 없었음을 시인하게 되었고, 술로 인해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난 숱한 문제들을 자각하게 되었다.

    2단계는 ‘자기 인식의 훈련’을 통해 내 자신의 객관적인 태도와 장점들과 단점들을 살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3단계는 과거 알코올 중독의 진행과정을 성찰함으로써 진정한 회복의 길을 결심하고 또다시 술의 아픈 과거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통회와 은총의 시간이었다.

    4단계는 퇴원 후 생활을 준비하며 술 없이도 살아갈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면서 단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초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치료를 마쳐가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성당에서 묵상을 하는데, 서울 상계동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사목하시던 신부님의 얼굴과 장례식 장면이 떠올랐다. 장례미사를 집전하시던 추기경님께서 “외국 신부로서 우리 나라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그처럼 사랑하시던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슬프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루빨리 그들을 사목할 한국 신부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신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서 번민하게 하였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서 사목할 자격이 없어.”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이제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나처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당하는 중독자들이나 가족들을 위해 나에게 남은 앞으로의 사제생활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주교님께 퇴원 후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사목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가톨릭 알코올 사목 센터 탄생]

    퇴원 후에도 나는 추후치료를 받기 위해 광주의 병원을 다녀야만 하였다. 매주 아침도 거른 채 고속버스나 기차로 내려가면서 식사를 하는 동안, 가끔 고통스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그 자체를 보속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술로 인해 피해를 주었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그 해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또한 틈나는 대로 앞으로의 사목을 위해 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시간의 여유가 많이 생겼지만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니 매우 바삐 보내게 되었다.

    동생 신부가 있는 본당에서 1년 반을 지내는 동안 단주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신자들은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따뜻하게 있는 그대로 대해주었기에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자리를 함께하면서 술 없이 식사만 하도록 배려해 주었던 신자들에게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어느새 해가 바뀌어 가을로 접어드는 때에 교구장님과 주교님들의 특별한 배려로 ‘가톨릭 알코올 사목 센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목 책임자로 임명받는 순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한없는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현재 나의 바람은 교회가 알코올 중독자와 가족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는 것이다. 또한 알코올 중독자들이 폭넓게 치료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빠른 시일 안에 의료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너무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사목자들에게는 많은 영혼을 구하려 하기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데서 큰 기쁨을 찾아보자고 주제넘게 제안하여 본다. 세상을 정복한 영웅보다도 한 영혼을 구한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나는 오늘의 새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오늘도 술 없이 즐겁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알코올 중독자와 가족들을 만나러 가톨릭 알코올 사목 센터로 발길을 옮긴다.

    “주님, 전에는 술로 인해 슬펐지만 술이 없는 지금은 기쁨이 넘쳐요. 주님, 전에는 술로 인해 텅 빈 마음이었지만 술이 없는 지금은 충만함이 넘쳐요.”


    허근 바르톨로메오/ 신부. 서울 중림동 가톨릭 알코올 사목 센터(☎ 02-364-1812)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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