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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 술없이

<ul>오늘 하루만 술없이           - 가톨릭다이제스트 2002.7


한번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는 해병대.
나는 1980년 2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평범한 신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2년 16명의 동료 신부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해병대 군종신부로 배치를 받은 것이 훗날 치명적으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이가 젊었고 체력에도 술에 자신감이 넘쳤다. 한번 술을 마시면 앉은자리에서 소주 8병 정도를 물 마시듯 거뜬히 해치웠다.

삭막한 군대생활에 술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위로였지만, 날이 갈수록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나는 본래부터 유전적으로 체질적으로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주위 환경까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데 좋은 기여를 하였다.
군제대를 할 무렵에는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몸으로 변해 있었다. 제대 후 본당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과의 친교를 빙자하여 음주 횟수는 늘어만 갔다.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고 본당에 부임하면 신자들은 "술을 잘 마시며 화통한 신부가 왔다."고 처음에는 대부분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 대한 좋은 생각과 감정은 비난과 조소를 바뀌기 일쑤였다.

어느해 겨울 새벽미사를 봉헌하고 해장국을 먹으로 가서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도 밖을 보니 해가 보였다.
"아, 이제 해가 떴군요." 하자. 신자 한 명이 "신부님, 저 해는 지금 서산에 지는 해예요." 나는 그 날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종일 술을 마셨던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주 빈도도 늘어만 갔고, 때와 장소도 아랑곳하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로 변신해가고 있었다. 술로 인한 엄청난 실수들, 수취심과 자괴감으로 견딜 수 없기에, 다시 이를 잊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마시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었다. 나는 한번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고, 술을 마실 때 대화 내용이나 행동도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기간이 흘러 갈수록 나의 몸, 정신, 영혼까지도 황폐화되었다. 이름만 신부였지, 실제로 영적인 면이나 역할 면에서 신부라고 하기에는 창피할 정도의 삶이었다.

술로 인해 신자들과 많은 문제들이 발생되었고, 사제 생활마저 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나에게 단주를 원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분노하며 내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란 사실을 부인하였다. 어머니는 눈물로 수많은 날들을 못난 아들 신부가 술을 끊도록 성모님께 간구 하였다. 사제생활 역시 세찬 폭풍우 앞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희미해졌을 때 한줄기의 강한 빛이 비쳐왔다.

1998년 2월, 그것은 다름 아닌 평소 나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주교님의 눈물어린 충고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4개월간의 치료와 추후 치료를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기도로 인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병원 입원 중에 하느님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말아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이사야 43:18~19)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한없는 위로와 믿음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평생 살기로 결심을 하였다.
1999년 가을 정 진석 대주교님과 김 옥균 주교님의 배려로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알코올 사목센터에서 다양한 알코올 중독자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한때 대학교 학생회장을 했던 50세쯤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할머니는 내 앞에서 "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바보멍청이가 되어 버렸어요." 현재 어느 정도의 지능이 살아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이름과 주소를 써보라고 했다. 하지만 쓰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술이 지능을 철저하게 파괴한 것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몇해 전 K씨가 나를 찾아 왔길래 상담하러 온 동기를 물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로 인해 이혼의 문턱에까지 간 그에게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아빠, 허 신부님 한번만 꼭 만나 주세요."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알코올 중독치료를 받게 되어서 현재는 회복되었다. 가정도 본래 상태로 행복해졌고 회사로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알코올 사목을 하면서 오랜 동안의 알코올 중독의 늪으로부터 벗어나는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실감한다.

우리나라에는 알코올 중독자와 남용자를 모두 합해 약 7백30만명정도이다. 이들 모두가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고, 구원 대상자라 생각하니 안스럽다. 혹시 독자 중에 술이 본인, 가정, 대인관계, 사회생활, 신앙생활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알코올 사목센터로 연락 주시기 바란다. 알코올 중독이란 질병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오늘이란 새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단주의 결심을 새롭게 다짐한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형제, 자매들과 가족들에게 미소하나마 힘과 빛이 되기 위해서 알코올 사목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님, 정말 오늘 하루만 술 없이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소장 허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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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중독은 가정까지 파멸시키는 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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