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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자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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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이 알코올 중독으로

술은 조금밖에 마시지 못하던 내가 1982년 16명의 동료 신부 중에 유일하게 해병대 군종 신부로 배치를 받은 것이 알코올 중독의 결정적인 빌미가 되었습니다. 힘든 훈련에다 병가의 특성상 억센 젊은 패기가 주량을 늘리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젊었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었던터라 한번 술을 입에 대면, 끝장을 보는 해병대의 기질이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어떤 때는 세 명이서 소주 한 짝을 비워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3년 동안의 군복무를 마칠 무렵에는 이미 나쁜 음주 습관이 몸에 스며 있었습니다. 제대 후 본당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과의 친교를 빙자하여 술자리를 갖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후에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구든지 처음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면서 술을 마시지만, 음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술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리고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고 새로운 성당에 갈 때마다 신자들은 “술을 잘 마시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사나이다운 신부가 왔다” 하며 처음에는 대단히 좋아들 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의 그러한 생각은 얼마가지 않아 비난과 조소로 바뀌기 일쑤였습니다.
더구나 여러 신자들과 어울리면서 대작(對酌)은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한 잔씩만 받아도 순식간에 몇 잔이 되어 버렸고, 거절하지 않고 오기로 마셔 댔습니다.

해는 붉은 얼굴로 인사하네
아침을 여는 순간부터
술과 함께 오늘을 시작했네
어느새 해는 서산을 넘어가며
붉은 얼굴로 인사를 하네.
(시집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겨울 언젠가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해장국을 하는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문득 밖을 보니 떠올랐던 태양이 서산으로 지고 있었던 경험을 되살려서 쓴 시입니다. 나는 그날 하루 중일 술을 마셨던 것입니다. 그날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그날의 약속과 해야할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또한 전날 얼마나 술을 퍼마셨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다음날, 나는 황당한 소문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술에 취해서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함께 마셨던 신자가 찾아와서 “신부님, 큰일났습니다. 어제 함께 술 마시던 형제와 말다툼 끝에 치고 받고 싸웠는데, 그 형제가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요.” 나는 그 소리를 듣자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나는 전날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의 행동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과일 한 봉지를 사 들고 병원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돌아오면서 앞으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은 술을 마신 다음날 정신이 들면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지난밤의 일들, 이로 인한 수치심과 자괴감(自愧感)으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이를 잊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술을 찾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을 술과 함께 살다 보니 성당 주임 신부라는 것은 허울뿐이었고, 미사 집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인격적으로 타락했거나 의지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 자체가 나로 하여금 술을 찾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나는 몸, 정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황폐화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덜 맞아서 엇나가기만 하는가? 머리는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병이 들었으며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어 상하고 멍들고 맞아 터졌는데 짜내고 싸매고 약을 발라주는 이도 없구나”(이사야 1,5~6)

주교님의 눈물어린 충고  
알코올 중독이란 늪에 빠진 나의 삶은 외모만 신부였지, 내면은 신부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스스로 사제 직분의 생활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자 나를 사랑하던 신자들은 나에게 단주할 것을 권했으나 마이동풍이었습니다. 더욱이 단주를 권하는 신자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서 나의 마음은 무뎌질대로 무뎌진 상태였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나는 남의 충고마저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네 개의 타이어가 모두 바람이 빠져 있는 차를 보고, 시동은 걸리는데 왜 가지 않느냐고 닦달하면 차가 굴러갑니까? 나는 그때 이와 같은 차였습니다. 술을 조절할 수 있는 네 가지 기능인 신체, 지능, 감정, 의지가 모두 망가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으려면 적어도 이 네 가지 기능 중에서 하나라도 조금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때 나는 모든 것이 황폐화되어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평소 나를 사랑해 주셨던 김옥균 주교님께서 1997년 3월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어떻게 사제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애정어린 충고를 하셨습니다. 나는 그 순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단주를 할 수 없었고,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술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알코올 중독에서 혼자의 힘만으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1998년 초, 나를 걱정하신 나머지 주교님은 다시 불러 나에게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아 보라고 눈물어린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 입원하여 4개월간의 치료를 하느님의 은총 안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오늘 하루만 술 없이 살게 하소서
몇 해 전 K씨가 나를 찾아왔기에 상담하러 오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술 문제로 이혼하려는 어머니에게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마지막으로 “아빠, 허 신부님 한번만 만나 주세요” 해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가정은 화목해졌고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는 열심히 단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사목을 하면서 나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형제, 자매들이 오랜 동안의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실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란 질병에 걸린지도 모르면서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임을 생각할 때 안쓰럽습니다. 혹시 독자 중에 술이 본인 자신, 가정, 대인 관계, 사회 생활, 영성 생활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우리 알코올 사목 센터로 연락 주십시오. 알코올 중독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 정말 오늘 하루만 술 없이 맑은 정신으로 살게 하소서.”



   허근 신부가 세상에 쏟아내는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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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소장 허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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