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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근 신부가 세상에 쏟아내는 ‘고해성사’

    알코올 중독 극복 후 중독자 재활치료 돕는 성직자 허근 신부가 세상에 쏟아내는 ‘고해성사’   
    -  여성조선


    “소주 8병·맥주 24병이나 해치우던 저였지만, 이제는 콜라만 마셔도 대화가 잘 됩니다”  

    최근 평화신문에는 '허근 신부의 알코올 탈출기'라는 이색 칼럼이 연재되고 있다. 현재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허근 신부, 그는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다. 소주 8병, 맥주 24병을 앉은자리에서 마셔버리고 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전문 병원에서의 치료 후 완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를 돕고 있는 허근 신부의 감동 스토리.

    '술은 이슬비가 몸을 적시듯 서서히 나의 몸을 파괴했고, 결국에는 영혼까지 무너뜨렸다. 정상적인 사목이 불가능했고, 신자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겨울철 가슴을 파고드는 추위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허근 신부(50)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지난 6월 12일 명동성당의 주교관에서 허근 신부를 만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제 방에는 침대와 책상, 옷장만 놓여 있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TV는 없앴다고 했다. 손님이 앉을 의자가 없어 인터뷰 장소를 지하 1층의 식당으로 옮겼다. 10여 명이 앉을 만한 둥근 탁자가 놓인 식당은 작고 아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 두 개의 전기밥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우선 자신의 뼈아픈 체험을 공개하는, 쉽지만은 않았을 그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을 때 신자들과 심지어는 주교님이 저한테 '술을 끊으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는 화를 내면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면서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란 사실을 부인했지요. 4년 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지 않고 술을 끊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폐인이 되었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알코올 중독은 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어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제 경험이 중독자들과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된 겁니다.”
    글이 나간 후 많은 곳에서 전화로, 이메일로, 또 직접 방문하는 등 관심과 격려를 보내왔다고 한다.


    [해병대 시절의 음주습관이 점점 더 심해져]

    친가로는 7대, 외가로는 6대가 천주교 신자인 집안에서 태어난 허근 신부는 1980년 2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3남 2녀 중 장남인 허 신부의 남동생들도 모두 신부로 봉직 중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신학교 부설 기숙사 학교에 다녔고, 가톨릭대학 시절에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던 허근 신부. 80년 서울 돈암동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첫 발령을 받은 그는 신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듬해 추기경 비서로 일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하고 착실한 사제일 뿐이었다.
    고약한 음주습관이 굳어지게 된 계기는 82년 해병대 군종신부로 배치를 받으면서부터였다. 16명의 동료 신부 중 그만 유일하게 해병대에 배속받았다.

    “해병대가 굉장히 와일드하잖아요. 한 장교가 '신부님처럼 온순해서는 살기 힘들다'며 욕을 가르쳐줄 정도로 처음에는 제가 얌전했어요.(웃음) 하지만 뭘 하든지 끝장을 보는 해병대 기질이 점점 몸에 익어 한번 술을 마시면 앉은자리에서 소주 8병을 물 마시듯 거뜬히 해치웠습니다. 제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술을 좋아하셔서 유전적으로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체질을 타고난 것도 한몫했지요.”

    3년 후 군 제대를 할 무렵에는 술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해인 98년까지 계속되었다.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고 본당에 부임하면 처음에 신자들은 “술 잘 마시는 화통한 신부가 왔다”고 대부분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비난과 조소로 바뀌었다. 서울 상계동 성당, 면목동 성당, 난곡 성당으로 옮기면서 그의 중독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미사가 끝나고 그들이 돌아간 후의 공허함과 고독을 술로 달랬다. 허근 신부는 “하느님과 결혼한 사람이 결혼한 사람과 지내지 못하고 마음대로 살았다”며 “혼자 있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95년도 무렵부터는 해장술을 먹기 시작했어요. 어느 해 겨울 새벽 6시에 미사를 드리고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도 밖을 보니 해가 보였어요. '아, 이제 해가 떴군요' 하자 '신부님 저 해는 지금 서산에 지는 해예요' 하더라고요. 하루종일 술을 마신 것이었어요.”

    술버릇도 나빠져 술에 취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군대시절에 배웠던 욕을 하고 심지어 치고 박는 싸움을 하기도 했다. 전날의 실수 때문에 술 마신 다음날이면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다시 만나면 사과하고 싶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난곡 성당에서였는데, 신자들과 회식을 하면 갈빗집의 아줌마가 옆에 와서 서 있었어요. '갈비 구우면 제발 두 점만 드세요'라고 하시면서. 얼마나 안주를 안 먹었으면 그랬겠어요? 그때 저는 술에 취해 '니가 내 마누라냐'라며 쌍소리를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할 뿐이에요.”


    [폐쇄병동에서 하루 30분 동안 햇볕 보는 생활]

    허근 신부는 “만약 신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서울역 지하도에 있었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성직자니까 일반인과는 의지력 면에서 좀 달랐을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 말은 성직자는 암에 안 걸린다는 것과 같다”며 “알코올 중독을 병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봐야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의지가 약하다는 등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절단한 사람에게 '너는 왜 바보처럼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일단 질병에 걸리면 다 똑같습니다.”

    1998년 2월이었다. 평소 허근 신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던 김옥균 주교가 그에게 눈물어린 충고를 했다.
    “아직 젊은데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신자들을 위해 더 봉사해야 되지 않겠느냐? 지금 상태로 술을 마시면 죽는다.”

    어머님과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술을 끊도록 충고했지만, 스스로 알코올 중독자임을 부인해왔던 허근 신부는 드디어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사람들이 면회를 올까봐 성당에서도 비밀에 부쳤고, 병원도 서울이 아닌 광주의 성요한 수도회로 선택했다. 입원 당시 그의 몸무게는 46㎏(현재는 58㎏이다). 이미 세 끼 식사를 밥이 아닌 술로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의사와의 면담 결과는 알코올 중독 위기상태. 바로 입원치료가 시작되었다.

    “하∼. 제가 교도소에 수감된 분들의 심리를 이해하겠더군요. 폐쇄병동에 들어가는 순간 뒤에서 철문이 닫히더라고요. 하루에 30분 정도 병동 건물 가운데에 있는 벤치에 가서 일광욕을 할 수 있었어요. 비가 오면 하루종일 햇빛조차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그는 이 대목에서 비감한 어조로 “우리는 더 큰 것을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지만, 세상살이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라고 말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제가 의사에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지만 약의 힘을 빌려 치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 약물치료를 받지 않았거든요. 2주 동안 멍해지고 환청이 들렸습니다. 복도를 걸어가면 뒤에서 어떤 사람이 저한테 '술 처먹더니 결국 이렇게 됐군' 하고 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불면증에도 시달렸지요.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남과 외부를 보는 데는 익숙했던 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었습니다.”

    허근 신부는 “금단증상이 심각한 경우 자신이 7층에 있는데도 1층에 있다고 생각해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다”며 “심각할 경우에는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4개월 동안의 입원치료를 마친 그는 퇴원 후 동생 신부가 있는 일산의 본당에서 그 해 10월까지 추후 통근치료를 받았다. 틈나는 대로 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다니며 앞으로의 사목을 준비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신자들의 싸늘한 반응이 두려웠지만, 오히려 신자들은 아무 편견 없이 그를 격려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술을 끊지 않았더라면 어머니한테 크나큰 한(恨)으로 남았을 겁니다.”



    [은행 지점장, 대기업 국장 등도 알코올 사목센터 찾아]

    폐쇄병동에 있을 때 허근 신부는 '치료가 끝나고 단주(斷酒)생활이 잘된다면 알코올 중독자와 가족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결심했고 주교들에게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1999년 10월 드디어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가 탄생했고, 그는 소장을 맡았다. 한달 평균 80여 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2000년 5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당장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알코올 중독자가 330만 명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겨우 6,000명 정도만이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허근 신부는 무조건 술을 끊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주의 목표를 세울 것을 주장한다.

    “노숙자들에게 '술은 나쁜 것이고 건강에 해로우니 마시지 마세요'라고 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요. 하지만 '그래, 술을 끊을 테니 그 다음에 나한테 남는 게 뭐냐'고 되물어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은행의 지점장을 지낸 분이 알코올 중독으로 저희 센터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물었지요. '은행 지점장이 당신 인생의 목표였느냐'라고요. 그것은 경제적인 수단일 뿐,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니냐고요.”

    3년째 이 일을 해온 허근 신부는 그동안 알코올 중독자들이 상담과 재활치료를 통해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많은 보람도 느꼈다고 한다. 얼굴이 엉망진창인 어떤 알코올 중독자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이끌려 사목센터를 찾았는데, 그를 보자마자 “우리 할머니 장례미사를 술 취해서 드렸던 신부 아냐?” 하고 말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허 신부는 깜짝 놀랐고, 그는 “술에 취한 신부가 미사를 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과연 천당에 갈 수 있었겠냐?”고 비난했단다. 허 신부는 잠시 후 “그 당시에 당신은 건강한 음주자였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치료를 받고 건강해졌지만, 당신은 오히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렸군요”라고 말하며 그를 설득, 병원에 입원시켰다.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허근 신부는 알코올 중독자의 자녀나 아내는 '공동의존(共同依存)'이라는 병을 앓을 위험이 높다고 한다.
    “일류대 출신의 대기업 국장인 아버지가 자주 술에 취해 폭언을 일삼는 바람에 아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따돌림을 받으면서 문제아 취급을 당했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되고 나서야 이 아들은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들은 의처증이 심하기 때문에 그 아내가 고통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알코올 중독에 관한 책이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는 허근 신부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코올 중독에 관한 책을 펴낼 예정이다.

    기자는 혹시나 하고 “입원 치료 후 지금까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셨나요?” 하고 물었다. 아무리 단주라고 하지만 설마 술 한잔도 안 먹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네. 한 잔도 안 마셨습니다. 미사를 드릴 때에도 축송만 하고 포도주는 마시지 않습니다. 주교님한테 특별히 허락을 받았거든요. 요즘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콜라 마시면서 대화합니다. 술이 없어도 대인관계는 잘할 수 있더라고요.”


    글·박란희 기자(rhpark@chosun.com)|사진·김영훈 차장(yhkim@chosun.com)




   “酒를 主로 모신 것도 하느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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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중독자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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